선생님들의 시간은 2023년에 멈춰있다 유상범 교사노조연맹 교권1국장 서정혜 2025-06-25 19:52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25년 5월 22일, 모두가 알고 있지만 외면하고 침묵하던 그 문제를 다시 마주하게 됐다. 제주의 한 중학교에서 들려온 선생님의 사망 소식은 몇 줄의 보도였지만 몇 줄을 읽는 것만으로도 선생님들은 2023년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제주라는 좁은 지역에서 지인들에 의해 들려오는 소식만 듣고 무작정 장례식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빈소에 오른 이름들을 살피며 고인의 이름도 모르는 채 겨우 유가족을 만나고 조의를 표했다. 그렇게 일면식 없던 선생님의 빈소에 앉아 가족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학교 현장에서 20년을 지켜온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가족을 통해 들은 이야기는 이미 많은 교사가 익히 아는 이야기였다. 개인 전화로 밤낮으로 악성 민원에 시달렸던, 마지막엔 식사마저 거의 할 수 없었고 심각한 두통에 괴로워했다는 선생님의 이야기는 나의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악성 민원에 시달려본 교사는 해당 학부모의 번호로 휴대폰이 울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카톡이나 문자에 알림이 뜨는 것만으로도 감전된 것처럼 놀라는 경험을 한다. 안타까운 점은 이런 괴로움이 끝이 없을 것 같다는 절망적인 느낌이다. 2023년 서이초 선생님 사건의 원인은 ‘악성 민원’이었다. 2년이 지난 오늘도 제주의 한 중학교 사건의 원인 역시 ‘악성 민원’으로 조명되고 있다. 2023년 대한민국 교사들이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외쳤던 함성은 공허한 외침이 되었고 그간 만들었다던 교권 5법이나 각계의 노력은 한 사람의 민원으로 허물어 질만큼 가벼웠다. 선생님의 시간은 2023년에 멈춰있다 2025년이 절반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학교 현장의 문제들은 이미 끝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2월 10일 대전 초등학생 피살 사건, 4월 10일 서울 양천구 고3 학생의 수업 중 휴대전화 생활지도 교사 폭행 사건, 4월 24일 청주시 고등학교 특수 학생이 흉기를 휘둘러 여러 교직원이 상해를 입은 사건 등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으며 5월 스승의 날이 고작 일주일 지나 벌어진 이번 사건을 보면 어쩌면 선생님들의 시간은 아직도 2023년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서이초 사건 이후로 마련된 2024년 교육부 ‘학교 민원 응대 안내자료’는 민원 처리와 관련하여 상세한 지침을 주고 있으며 민원 처리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학교장 책임하에 민원 처리 및 민원창구 일원화를 위해 학교별로 운영하는 민원대응팀은 누가 어디에서 어떤 업무를 하는지 찾기 어렵다. 시·도교육청별로 민원 대응 계획을 수립하고 학교로 안내하고 있지만, 대부분 교사는 민원대응팀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다. 2025 교사노조연맹 학교 민원 설문에서 ‘현재 근무 학교의 민원대응팀 차원의 실질적인 민원 대응이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66.6%의 교사가 부정응답(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에 답했다. 또한, 64.5%의 교사가 ‘학교 내 민원 응대 또는 상담이 가능한 별도 공간이 마련되어 필요시 CCTV, 비상벨 등을 통해 긴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습니까?’는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40.4%), 그렇지 않다(24.1%)’라고 응답했다. 이처럼 학교 내 민원 대응 시스템은 제도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지원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 2025년 5월의 현실이다. 일반 공공기관의 민원과 다르게 학교 민원은 매우 복잡하고 처리가 곤란하다. 학급 및 학교 외 사안까지 처리를 원하는 광범위한 민원, 교육과 무관한 사생활 개입, 사적인 요구, 과도한 요구, 신원을 밝히지 않고 민원의 형식을 갖추지 않는 출처 불분명한 민원 제기, 답변 사항에 대해서도 반복적 요구 등이 계속됐다. 2025 교사노조연맹 학교 민원 설문에서 파악한 악성 민원이 발생하는 주된 경로는 ‘교사 개인 휴대전화 및 온라인 소통앱’(84.4%)이다. 이는 민원의 창구가 단일화되지 않고 교사로 직접 연락할 수 있는 문제점에서 비롯된다. 모두가 학교는 교육하는 곳이라고 한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주된 업무이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선생님이 가장 어려운 부분은 수많은 민원, 업무시간을 넘어서 개인의 사적인 공간과 시간까지 모두 침범하고 마는 끝이 없다고 느껴지는 민원들이다. 정말 해결 방법이 없을까? 복잡해 보이는 문제이지만 결국 해결 방법은 단순할지도 모른다. 2024 교육부 민원 대응 매뉴얼에서 안내된 것처럼 무너졌던 기본 원칙들을 바로 세우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 교직원, 학부모 등에게 민원대응팀의 역할과 운영에 대한 충분한 안내가 선행되어야 하며, 교사가 학부모와 직접 연결되는 구조가 아닌 기관 차원에서 접수하여 처리하며 학교 방문과 상담에 대해서는 시간과 장소를 협의, 민원의 형식을 충분히 작성 후 사전 예약제를 통해 진행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민원처리법 시행령」에 따라 폭언·폭행 등으로 민원 처리를 지연시키거나 방해하는 민원인에 대한 퇴거 조치, 민원 처리 담당자에 대한 보호조치로서 현장에서의 분리와 업무 일시적 중단, 치료 및 상담 지원과 함께 필요시 기관 차원의 고소·고발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교육부에서 구축 중인 온라인소통(민원)시스템을 통해 교사나 학교가 사용하는 개별적 소통앱의 사용을 지양하고 기관 차원의 대응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현장의 교사들은 마련되는 시스템을 통해 ‘특이-악성 민원 시 교육청 통합대응팀 이관 및 신고 처리 기능(83.9%)’, ‘특이-악성 민원에 대한 민원 제한 및 차단 기능(82.2%)’, ‘근무 시간 외 민원, 직무 범위를 넘어선 상담에 대한 거부 기능(80.4%)’, ‘민원 내용에 대한 질의-답변 내용에 대한 민원인별 누가 기록, 악성 민원 별도 관리(67.3%)’, ‘반복적 민원에 대한 FAQ 기능(60.5%)’등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 학교로 들어오는 민원을 교사 개인에게 전달하고 처리하라는 지금의 방식에서 벗어나 오프라인과 온라인 민원을 통합하고 전문적인 역량을 갖춘 민원대응팀에서, 개인이 아닌 기관 차원에서 대응한다는 기본 방침이 지켜져야 한다. 故현승준 선생님이 우리 모두에게 주는 마지막 가르침 마련된 빈소에 시간이 지나며 조문객들이 찾기 시작했다. 겨우 입관을 하고 소식이 전해지기에도 이른 시간이었지만 먼저 찾아오기 시작한 발걸음은 선생님의 옛 제자들이었다. 이미 대학생들이 되어 장성한 제자들이 멀리 소식만 듣고 찾아와 영정에 있는 선생님의 얼굴을 확인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소식만 전해 듣고 육지에 있어 직접 오지 못해 제주에 있는 어머니에게 꼭 대신 가달라는 제자도 있었다. 모두 제각각의 교복을 입은 수백 명 학생과 동료 직원, 학부모님들까지 찾아오며 장례식장은 다른 층까지 가득 채워질 만큼 가득 찼다. 아이들은 일주일 전 선생님에게 연락했었다며, 만났었다며 이야기를 나누고 너무나 현실감 없는 선생님의 죽음 앞에 빈소를 떠나지 못했다. 장례의 마지막 날 학교에 선생님의 운구차가 들어서는 모습을 바라보며 일요일임에도 교실 창문 가득 고개를 내밀어 선생님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살면서 본 가장 슬픈 장면이었다. 5월 22일 우리는 자식을 잃었고, 배우자를 잃었고, 부모를 잃었다. 선생님을 잃었고, 동료 교사를 잃었다. 어쩌면 ‘누군가 해결해 주겠지’라며 외면했던 문제에 이제는 답해야 할 때이다. 서정혜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 <공공재생에너지법> 제정, 정의로운 전환을 실현하는 첫걸음! 25.06.25 다음글 양대노총 공대위 "공공성에 기반한 공공기관 대전환 촉구" 25.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