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일자리 공포 속 진짜 질문 오나영 서정혜 2025-08-04 20:22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AI가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공포가 한국 사회에 만연하다. 최근 ChatGPT를 개발한 오픈AI의 경쟁사인 앤스로픽 CEO 다리오 아모데이가 “AI가 향후 5년간 모든 신입 사무직 일자리의 절반을 없애고 실업률을 최대 20%까지 급등시킬 수 있다”고 발언하는 등, 충격적인 예측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자리가 언제 AI에게 밀려 사라질지 걱정한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AI가 우리 일자리를 빼앗기기 전에, 정작 우리에게는 빼앗길 일자리조차 없는 것 아닐까? 한국의 청년 고용 상황은 이미 오랜 시간 위기였다. 대학을 졸업해도 인턴을 거쳐야 하고, 인턴을 해도 정규직 전환은 보장되지 않는다. 간신히 일자리를 구해도 계약직이거나 단기직이다. 기업들의 신규채용 공고는 나날이 사라져 간다. 불안정한 프리랜서와 플랫폼 노동이 일상이 되었다. 지난 3월에는 '쉬었음' 청년 인구가 통계 작성 이래 최초로 50만 명을 돌파했다. 업무 강도는 강해지고 임금은 생활비에도 못 미친다. 월세와 대출 이자에 쫓기며, 내일을 계획하기 어려운 삶이다. 이건 AI가 만든 문제가 아니다. 노동시장의 구조가 낳은 결과다. '좋은 일자리'는 소수 대기업과 공공부문에 집중되어 있고, 대부분은 낮은 임금과 짧은 계약 기간, 사회보장 사각지대 속에 놓여 있다. 기술은 분명 발전했지만, 일터의 시간과 임금, 고용 안정성은 오히려 후퇴했다. 야근은 줄지 않고, 임금은 오르지 않으며, 고용은 더 불안정해졌다. 왜일까? 현재의 경제 구조에서 AI는 노동비용 절감을 통한 이윤 극대화의 수단으로만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AI가 생산성을 높인다면 그 이익이 사회 전체에 공유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일자리를 잃을까 봐 AI와 경쟁해야 하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노동자는 “AI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이유로 임금 협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 심지어 “AI 덕분에 일이 쉬워졌으니” 더 많은 업무를 떠안게 되는 일도 다반사다. 자동화가 손해일 정도로 저임금인 단순 노동만이 남는다. 그러나 이조차도 기업들은 더 싸고 유연한 고용형태, 예컨대 플랫폼 노동으로 대체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AI를 마주하고 있다기보다, AI를 핑계로 정당화되는 불안정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생각한다. 우리가 지금, AI 일자리 공포에 질려 AI에 대체되지 않을 직무를 찾아 자기계발에 매진해야 할 때인가?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질문은 이런 것들이다. 왜 우리는 기술이 발전해도 생계는 여전히 위태로운가. 우리는 왜 일자리를 두고 AI와 경쟁해야 하는가.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는 왜 점점 멀어지는가. 다론 아제모글루와 사이먼 존슨은 『권력과 진보』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테크놀로지를 가지고 무엇을 하는가는 우리가 그리는 진보의 방향이 무엇인지와 무엇을 감당 가능한 비용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달려 있다. 또한, 우리가 실수와 현장에서 나오는 증거에서 무엇을 배우는지에도 달려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AI는 어떤 방향으로 활용되고 있는가? 소수의 이익을 위해서인가, 다수의 번영을 위해서인가? 우리는 노동 현실—청년 실업, 불안정 고용, 임금 정체—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물론 AI는 여러 방면에서 획기적인 성능을 보여주며 많은 도움을 준다. 자료 리서치,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 단순 작업 반복 등 활용 범위도 무궁무진하다. 많은 직장인이 ChatGPT나 클로드 같은 AI 도구를 활용해 업무 효율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기술이 삶을 나아지게 하려면, 그 기술이 놓일 사회적 기반부터 갖춰져 있어야 한다. AI 산업을 육성하려는 국가적 목표가 유지되려면, 토대는 사람 중심의 노동시장이어야 한다. 기술의 발전이 개인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지지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려면, 먼저 일자리의 안정성과 노동자의 존엄이 보장되어야 한다. 즉, AI 강국을 목표로 한다면, 그 기술이 뿌리내릴 구조와 제도를 먼저 정비해야 한다. 기형적으로 뒤틀린 노동시장의 정상화. 그것이 진짜 혁신의 출발점이다. 기술 이전에, 사람. 효율 이전에, 존엄. 그래야 AI라는 기술도 모든 사람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서정혜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 김포 근로자이음센터 개소 지역 비정규직·플랫폼·프리랜서 등 노동시장 사각지대 노동자 품는다 25.08.07 다음글 당정, 포스코이앤씨 산재 대응 나서 더불어민주당 산재예방TF의령 사고 현장 긴급점검 후 본사 방문 25.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