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법 2,3조 개정안 후속조치라는 ‘꼬리’가 법 개정 취지 ‘몸통’ 흔들어선 안 돼”
하청노동자에 온전한 노동3권 보장하는 제도 설계해야
서정혜 2025-11-1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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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남 한국노총 정책2본부 국장

 

포스코는 2018년 하청업체 성암산업의 분사 없는 매각을 노조에 약속했다. 성암산업은 작업권을 포스코에 반납하겠다며 노동자들에게 2020년 6월 자로 해고를 통보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중재로 6개 하청업체로 쪼개진 성암산업 노동자들, 이후 1년여가 지나 이들은 제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다른 하청업체인 포운에 새 자리를 틀었다. 하청 단위 임금·단체교섭이 진도를 빼지 못하자 노조는 원청 포스코에 사태 해결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작업권 반납 등의 일련의 과정에서 포스코가 '진짜 사장'이라는 점이 너무나 명확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하청 경력 15년 차인 A 씨의 2021년 연봉은 3천429만 원이었다. 2014년(4천974만 원)보다 31% 줄었다. 원청은 조선 경기 불황을 이유로 하청업체 기성금을 매년 깎았고, 이는 하청노동자 임금 하락으로 고스란히 전가됐다. 2022년 하청노조의 '임금 30% 인상' 요구는 '임금 원상회복'의 다른 말이었다. 470억 원 손배 소송이 제기된 2022년 조선소 독(Dock)을 점거하는 하청노조의 투쟁이 있고 난 뒤에야 하청업체 노사는 임금 4.5% 인상에 합의했다.

 

노동조합법 개정 목표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 모든 노동자에 노동3권 보장’

 

이 같은 하청노동자의 투쟁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개정의 필요성을 뒷받침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심화, 노동자 집단 간 임금·노동조건 격차 해소가 중요한 사회문제로 부각 되면서 개선방안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단계 하청, 플랫폼 노동 확산 등 경제구조 변화로 인해 나날이 복잡해지는 노동관계 문제도 대안 마련 요구를 분출하게 했다.

 

사회가 손 놓고 바라만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장 보수적 국가기관이라는 사법부도 하청노조에 대한 원청 사업주의 단체교섭 의무를 인정하는 판결을 확대해 갔다. 노무 제공 방식의 다양화로 인해 근로자 개념은 확대되고 있고, 근로계약 체결이라는 형식보다는 노무 제공의 실질에 근거해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 결과다. 노조할 권리를 통해 하청노동자·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을 사법부도 반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편 이런 현실에서 기존의 기업별 교섭은, 개별 노조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소하거나 완화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하청·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을 활용해야 하고, 노동조합이 제대로 활동할 수 있으려면 실제 지배력을 행사하는 원청과 교섭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래서 개정 노동조합법에 하청 단위의 교섭을 원청으로 확대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가 담기게 됐다.

 

그런데 개정 노동조합법은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라는 개념을 넣음으로써 사용자 개념에 대한 정의를 바꿨지만, 교섭을 촉진하기 위한 새로운 제도는 추가하지 않았다. 아마도 개정 노동조합법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제도 공백의 문제점이 부각할 것으로 보인다. 법 집행의 담당자인 고용노동부의 고심이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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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8일 오전 10시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노조법 2·3조 개정을 위한 현장노동자 증언대회’

 

한국노총, 원청과 하청노조 간 교섭 촉진 당근·채찍 노동부에 주문

 

한국노총은 노동조합법 개정 이후 법 개정 취지를 온전히 반영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원청과 하청노조 간 교섭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당근과 채찍을 내놔야 한다고 주문했다. 법 시행 전 준비해야 할 노동부의 핵심 과제는 원청과 하청노조 간 교섭을 촉진하는 데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간 노동부의 입장을 곱씹어 보면 개정 노조법의 입법 목적 달성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바심이 엿보인다.

 

개정 노동조합법은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해 하청·특수고용직 노동자 등의 노동조건을 지배·결정할 수 있는 원청도 '지배·결정하는 의제'에 대해서는 사용자 책무를 부여한다.

노동쟁의 개념에 포함되는 대상도 추가했다. 근로자의 지위,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 노조법 제92조 제2호 가목부터 라목까지의 사항(임금·복리후생비·퇴직금에 관한 사항, 근로 및 휴게시간·휴일·휴가에 관한 사항, 징계 및 해고의 사유와 중요한 절차에 관한 사항, 안전보건 및 재해 부조에 관한 사항)에 관한 사용자의 명백한 단체협약 위반이 추가한 대상이다.

 

노동부는 노동조합법 개정에 따른 집단적 노사관계 변화를 안내한다는 목적으로 지침이나 매뉴얼을 준비하고 있다. 교섭대상과 교섭의제를 확인하고, 노동쟁의 개념을 분명히 하고, 원청을 상대로 교섭할 때 창구 단일화 제도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정리하겠다는 취지다.

 

한국노총은 노동부와 간담회에서 교섭대상·교섭의제는 법 개정 이전의 과거 판례를 기계적으로 나열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전달했다. 고용형태 변화 흐름을 포괄할 수 있도록 교섭대상과 의제는 폭넓게 열어둬야 한다는 취지다. 대상과 의제를 구체적으로 나열한 뒤 “해당 의제를 종합해서 사용자인지, 교섭대상인지 판단한다”는 취지의 노동부 해석이 나와서는 안 된다. 사용자들은 ‘종합적 고려’라는 단어를 빌미 삼아 법원으로 사건을 끌고 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개정법에 따라 비정규직 문제·정리해고·사업장 이전·업종전환 등 다양한 의제가 노동쟁의에 포함됐고, 해당 의제를 이유로 쟁의행위를 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확대된 노동쟁의 개념을 판단할 때는 ‘노동조건·노동환경을 저해하거나 변화를 주는 경영상 결정’이라면 쟁의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어야 한다.

 

노동조합 자주적으로 개정 노동조합법 활용 방안 모색할 것

 

노동부가 가장 고심하는 부분은 원하청 교섭 시 창구 단일화 제도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다. 원청 기업을 하나의 교섭단위로 보고 원청 노조와 모든 하청노조가 교섭 창구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 노동부의 기본 생각으로 보인다. 교섭단위 분리 제도를 이용해 원하청 노조를 분리하고, 전체 하청노조를 대상으로 교섭 창구 단일화를 거치는 방식으로 제도를 운용한다.

 

이 경우 개별하청사에서 1차적으로 교섭 대표노조를 정하는 창구 단일화를 한 뒤, 여러 하청사의 교섭 대표노조 간에 또다시 교섭 창구 단일화를 거쳐 원청과 교섭하는 대표노조를 정하게 된다. 원청과 교섭하기 위해서는 하청노조 간 개별사업장 단위에서, 이어서 전체 하청사 단위에서 토너먼트식으로 조합원 수 경쟁을 해야 한다는 얘기여서 받아들일 수 없는 구상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노동조건을 지배하는 진짜 사장과 대화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는 위와 같은 창구 단일화 제도 아래에서는 실현 불가능하다. 한국노총은 하청 교섭에서 하청노조를 배제하는 형식의 제도 설계는 지양하자고 노동부에 요구한 상태다. 노동조합의 필요에 따라 하청노조 개별교섭, 하청사 공동교섭, 원·하청 연대교섭, 산별교섭 등의 다양한 교섭형태가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노동부 역할이어야 한다. 특정한 형태의 교섭형태를 강요하는 것은 자율적 노사관계 형성을 침해하는 국가 개입에 해당한다.

 

노동부는 개정법의 현장 안착에 골몰하다 법안 개정의 본 목적을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도 수차례 공개석상에서 "개정 노동조합법 후속조치라는 '꼬리'가 법률 개정의 본 취지인 '몸통'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 왔다.

 

노동조합은 개정 노동조합법 활용방안을 준비해야 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 하청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보장이라는 노조법 개정 정신을 활동의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정부의 개입이 아니라 노동조합 스스로 판단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을 이행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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